농민신문공모 제13회영농수기입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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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향나루 작성일09-12-18 20:21 조회10,5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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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꿈을 향한 나날들(후편)농민신문공모 제13회영농수기입선작
글쓴이 최근학 등록일 2004-04-27 [17:58] 조회수 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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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꿈을 향한 나날들 (후편)-영농수기 입선작
이름 : 운영자 (2003.3.30.새 홈으로 옮김)
게시일 : 2001/01/20 (토) PM 00:28:35 (수정 2001/01/20 (토) PM 00:35:29) 조회 : 418
농심을 뿌리채 흔들며 농민들의 가슴에 암울한 먹구름을 안겨준 우루과이 라운드의 거센 파고가 세차게 몰아치던 91년 2월!
나는 농협 중앙회에서 농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하여 실시하는 이달의 새농민 상을 받게 되었다.
그후 나의 주변에는 엄청남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집 한아름 농장의 주작목 농사였던 노지작형의 수박, 오이농사와 밤고구마 턴널 조기재배 농사가 첨단 농업으로 각광 받고 있는 시설채소 양액재배 농사로 탈바꿈되었고 현재는 기업화 농업만이 21세기를 향한 미래의 선진농업으로 가는 길임을 깨닫고 집단화로 이뤄진 대규모 자동화 양액재배온실과 대규모 프러그 육묘장을 운영하는 대산 영농조합 법인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또한 그후 나에게는 농어민 후계자 회장, 농촌지도자 회장, 농협 대의원, 새마을 지도자 등, 굵직 굵직한 직책들이 주어졌고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해오다 보니 충청남도 농어촌 발전대상 단체상과 본상 부문 "대상"의 영광도 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처럼 성장해온 것은 지난날의 좌절의 고통을 교훈삼아 미래의 대농장주로서의 푸른 꿈을 키우며 흙과 함께 나의 젊음을 다 바쳐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달의 새농민 수상자 아홉부부의 일행으로 91년 3월말 제 1차 일본 선진농업국 해외 연수를 마치고 돌아 오면서부터 이뤄진 것임으로 더욱 값진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 농민들은 어느날 갑자기 예고 없이 아닌 밤중에 홍두께 식으로 몰아 닥친 U.R 파고에 휩싸여 농정 부재를 성토하고 있을 때 내가본 일본 농민들은 농산물 수입개방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오직 새로운 신기술 소득작목 개발과 첨단농업으로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고품질 청정 농산물 생산으로 대응해 나가는 길 뿐이라는 그곳 농민들의 말을 듣고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국경 없는 무한 경쟁시대를 맞아 우리 농업도 오직 첨단 기술농업과 고품질 농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만이 우리 농업이 이땅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일본 연수를 다녀온 나는 몇날 몇밤을 지새우며 미래의 푸른 꿈을 설계하고 노지수박, 오이 및 밤고구마 농사를 마무리하기로 하고 개방화 시대에 걸맞는 신기술 고품질 농업으로 승부를 걸어 보기로 결심을 하였다.
일본 후쿠시마 현 선진농가 연수때에 내가 가장 관심있게 보았던 것은 첨단시설의 수경재배 현장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기왕이면 첨단 기술농업으로 승부를 걸어보는 것이 가장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수경재배 농사를 해 보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국내의 대표적인 농가 몇군데와 원예 연구소 수경재배 시설들을 돌아 보았으나 일본이나 국내 수경재배는 꼭 유리온실과 철골 P.C 온실 등 첨단 시설에서만 가능한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우리 곤장에서 생산 출하되고 있는 오이 작목은 토양재배보다 품질과 상품성 면에 월등히 떨어진다는 말을 연수과정 질의 응답에서나 영농 교육때 많이 들어왔고 수경재배에 관련된 서적들에서 여러 차례 읽어 보았기 때문에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제 저렴한 시설비를 들여 농민 누구나 쉽게 수경재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이 바로 내가 연구해야 할 과제였다.
나는 국내의 몇몇 군데의 수경재배 시설들을 농촌 지도소 담당 지도사와 함께 더 돌아보고 원예 연구소의 수경재배 관련 연구관들로부터의 여러 가지 자문도 들어보았다.
수경재배 관련 서적들을 구입하여 몇 번씩 되풀이해 읽어 보면서 여러 방면으로 구상을 해 보았다.
나는 결국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집 앞의 비탈진 계단밭을 정지작업하여 6백평 규모의 3연동 파이프 온실을 세우고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펄라이트를 이용한 절약형 점적식 배지경 양액재배를 시도하여 보기로 하고 세밀한 계획을 세운 후 농협에서 근저당 설정을 하여 대출을 받고 그동안 푼푼이 모아온 적금인출 등을 포함하여 5천여만원의 재원을 확보하였다.
그당시 우리 고장에서는 하우스 농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전, 무 했음으로 지원은 한푼도 받을 수 없었고 작목반원 모두가 100% 자부담으로 현대화 연동 파이프 온실 시공에 참여하게 되었다.
온실 시공업체에서 제시하는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자재만을 단체로 구입하여 안식구와 함께 4개월 동안의 긴긴 겨울동안 눈보라가 몰아치는 엄동설한의 날씨에도 모닥불을 피워놓고 손, 발을 녹이면서 온실 공사를 진행하였다.
온실 시공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동료 작목반원들의 도움을 받아 비닐 씌우기 작업까지 끝내고 나니 정말로 거대한 공장이 들어선 것 같이 웅장하고 은빛 찬란한 파이프 비닐 하우스의 모습이 들어 났다.
그러나 비닐작업을 마친 그날밤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이 떨어졌다. 결속끈을 허술하게 띄워서였던지 낮도 아닌 한밤중에 눈보라와 함께 몰아치는 돌풍으로 비닐을 날려 버렸다.
하늘을 치솟으며 세찬 바람에 날리는 비닐 소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그야말로 밤새 따발총 쏘는 소리보다 더했고 온 동네사람들이 놀라서 전화가 빗발쳤다.
온 식구가 발을 동동 구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다음날 날이 새면서 바라보이는 비닐 하우스 주변에는 0.12 짜리 그 두꺼운 오래가 필름이 산산조각이 나서 눈이 쌓인 것처럼 하얗게 깔려 있었고 철재들도 군데군데 엉망으로 된채 나의 마음을 서글프게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절망할 수는 없었다.
실망은 되었지만 비온 뒤 땅은 더욱 다져진다는 말이 있듯이 작목반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구부러진 철재들을 다시 손보고 비닐 씌우기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는 앞으로 더 큰바람이 불어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철고리를 구입하여 파이프에 드릴로 구명을 뚫고 고정을 시킨 뒤 파이프를 연결하여 고정끈을 견고하게 띄웠다.
내부시설은 관리기를 이용하여 골을 만들고 보온덮개를 깔아 베드를 만든 후 물이 새지 않도록 비닐을 깔고 산소공급과 물빠짐이 용이하도록 PE관을 2분의 1로 쪼개어 엎어놓고 그 위에 펄라이트를 채운 후 점적 테이프를 2열로 배열하고 흑백필름으로 멀칭을 하는 순서로 베드설치 작업을 모두 끝냈다.
배지재료로 사용한 펄라이트는 현재 양액재배 전용이 생산시판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전용배지가 없어서 공업용 보온 단열재로 생산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사용했다.
이제 모든 시설이 끝나고 작물정식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집 한아름 농장에는 첨단 유리온실 대신 중앙 집중제어방식 자동화 시설이 갖추어진 600평짜리 파이프 비닐온실과 값비싼 콘크리트 구조의 수경재배 시설 또는 외국산 랄울 베드시설 대신 보온덮개 베드와 펄라이트를 이용한 값싼 점적 관수식 배지경 양액재배시설이 4개월여만에 모두 완성되었다.
나는 국내 최초로 시도하고 있는 절약형 배지경 양액재배 방법이 부디 시험재배에서 성공을 거두어 첨단 기술농업으로 무한 경쟁시대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마음은 농민들 누구나 한결같아도 엄청난 시설비 때문에 선 듯 달려들지 못하고 있는 모든 농민들이 큰 부담이 되지 않고 저렴한 시설비로 일반 기존 비닐하우스에서도 누구나 간단한 시설로 그동안 큰 피해를 주고 있는 염류축적으로 인한 연작장해를 극복하고 연중재배와 장기재배가 가능하며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는 안전하고 신선한 고품질 농산물 생산과 쾌적한 작업환경속에서 단위 생산성을 높여 높은 농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첫 작목으로 선택한 오이묘를 정성을 다하여 베드에 옮겨 심었다.
시설공사의 지연으로 계획보다 10여일 늦은 92년 3월 중순 미리 육묘장에서 길러온 건실한 표를 조금만 시험해보고 면적을 늘려 나가라고 하는 몇몇 분들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600평의 전포장에 모두 정식을 마쳤다.
그러나 웬일인지 10여일이 지나도 오이묘는 활착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잎이 노랗게 변하고 있어 나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날이 갈수록 실패작이 되는가 보구나 하는 생각으로 애를 태웠으나 나는 틀림없이 무엇인가 잘못된 원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차근차근 그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결국 문제는 양액공급에서 잘못이 있었음을 알 게 되었다.
EC 측정기를 구입하여 양액의 농도를 체크 해보았더니 맹물에 가까운 0.1 미리몰의 성분량을 공급해주고 있었다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나는 곧바로 10배의 농도로 배양액을 공급했더니 3일 뒤부터는 오이잎이 진녹색을 띄며 활착이 되기 시작했다.
그후 우리 부부는 오이 전용 유인기를 설치하여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고 있는 오이 덩굴을 유인하며 마디마다 주렁주렁 열리는 오이를 수확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결과는 첫 시험재배 작형에서 국내 최초로 실용화에 성공을 하게 된 것이다.
밤고구마 터널 조기재배법 개발에 이은 두 번째의 개가였다.
나는 한없이 기뻤으며 흙과 함께 살아온 나의 반평생에 가장 보람있는 일로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알찬 성과라고 자신있게 말하고싶다.
5월 초부터 첫 수확을 하게 되었는데 품질과 상품성도 듣던 이야기보다 월등히 좋았고 관리에 따라서는 곡과도 적게 나오고 재래종 오이의 맛과 향기 그대로였다.
생산된 오이는 15kg들이 골판지 상자에 엄격히 3등급으로 선별하여 오이의 생명인 가시가 떨어지지 않도록 방습지 1장 깔고 오이 1줄 또다시 방습지 깔고 오이를 넣는 방법으로 포장하여 출하했다.
일반 오이오 구분을 하기 위하여 얼굴사진이 들어있는 스티커 상표를 제작하여 상자에 부착 출하를 했다.
이렇게 선별, 포장을 철저히 함으로써 국립 농산물 검사소 서산출장소로부터 품질인증까지 받아 출하를 하게 되니 연일 최고시세로 경락이 되었다.
농촌진흥청에서 발행하는 "농업기술"지와 새농민회에서 발행하는 "은수저" 그리고 지방신문인 "증도일보", "대전일보", "KBS라디오 농어촌은 지금" 프로 등 양액재배에 관한 내용들이 보도되자 전국 각지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농민들의 농장 견학이 줄을 이었다.
관심이 많은 농민들은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찾던 농사방법이라며 무릎을 치며 환호했고 비디오 촬영기까지 동원하여 구석구석 시설구조를 테이프에 담아 가기도 했다.
농장견학이 계속 이어짐으로 해서 견학 농민들에게 하루에도 몇차례씩 농장소개를 하다보면 시간을 많이 빼앗겨 일손이 모자라 애를 태울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구나 단체 견학팀이 방문했을 때는 개폐장치 및 양액 공급장치 계기등에 손을 대어 발생하는 피해도 여러 차례 겪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농장을 연일 찾아주는 견학 농민들을 볼 때 결코 우리 농촌과 농업의 미래도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으며 그들에게서 풍기는 순박한 농심이야말로 나에게 뿌듯한 보람을 안겨주었다.
최근에 와서는 우리 농장 시설과 똑같은 방법으로 양액재배를 하고 있는 농가가 날로 증가하면서 어느 때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양액재배에 관한 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첫해 봄, 가을 두작형을 합쳐서 4천 팔백여만원의 조수익을 올려 양액원료비와 농약비, 광열비 등의 경영비 6백여만원을 제외하고도 4천2백여만원의 순소득을 올렸다.
1년 농사로 총 시설시 5천만원중 80% 이상을 뺐다는 것은 나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1년간 촉성 및 억제작형의 오이 양액재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몇 가지 문제가 되었던 점들을 보완 또는 교체하여 이제는 완벽한 시설을 갖추었다.
18이랑의 보온덮개로 만든 베드시설을 스티로폼 베드로 주문제작하여 9이랑으로 절반으로 줄여서 베드 바닥에는 에스렐 파이프로 지중난방 시설을 설치하여 지난해 낮은 지온 때문에 있었던 문제점을 말끔히 해결하였다.
나는 지중난방 시스템도 1개의 보일러와 순환 모터로 6백평 전면적 구석구석이 일정하게 온도 유지가 될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지중난방 시스템은 우리식 양액공급시스템 개발에 이는 또 하나의 자가 개발품이다.
나는 지중난방 시설까지 설치하게 됨으로서 이제 한겨울철에도 마음놓고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했고 베드를 절반으로 축소 시킴으로서 배지 재료비도 함께 절반으로 절감시켰고 밀식으로 U자형 양방향 유인재배를 함으로서 자재배, 인건비 등 생산비를 더욱 절감할 수 있도록 했다.
글쓴이 최근학 등록일 2004-04-27 [17:58] 조회수 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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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꿈을 향한 나날들 (후편)-영농수기 입선작
이름 : 운영자 (2003.3.30.새 홈으로 옮김)
게시일 : 2001/01/20 (토) PM 00:28:35 (수정 2001/01/20 (토) PM 00:35:29) 조회 : 418
농심을 뿌리채 흔들며 농민들의 가슴에 암울한 먹구름을 안겨준 우루과이 라운드의 거센 파고가 세차게 몰아치던 91년 2월!
나는 농협 중앙회에서 농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하여 실시하는 이달의 새농민 상을 받게 되었다.
그후 나의 주변에는 엄청남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집 한아름 농장의 주작목 농사였던 노지작형의 수박, 오이농사와 밤고구마 턴널 조기재배 농사가 첨단 농업으로 각광 받고 있는 시설채소 양액재배 농사로 탈바꿈되었고 현재는 기업화 농업만이 21세기를 향한 미래의 선진농업으로 가는 길임을 깨닫고 집단화로 이뤄진 대규모 자동화 양액재배온실과 대규모 프러그 육묘장을 운영하는 대산 영농조합 법인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또한 그후 나에게는 농어민 후계자 회장, 농촌지도자 회장, 농협 대의원, 새마을 지도자 등, 굵직 굵직한 직책들이 주어졌고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해오다 보니 충청남도 농어촌 발전대상 단체상과 본상 부문 "대상"의 영광도 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처럼 성장해온 것은 지난날의 좌절의 고통을 교훈삼아 미래의 대농장주로서의 푸른 꿈을 키우며 흙과 함께 나의 젊음을 다 바쳐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달의 새농민 수상자 아홉부부의 일행으로 91년 3월말 제 1차 일본 선진농업국 해외 연수를 마치고 돌아 오면서부터 이뤄진 것임으로 더욱 값진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 농민들은 어느날 갑자기 예고 없이 아닌 밤중에 홍두께 식으로 몰아 닥친 U.R 파고에 휩싸여 농정 부재를 성토하고 있을 때 내가본 일본 농민들은 농산물 수입개방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오직 새로운 신기술 소득작목 개발과 첨단농업으로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고품질 청정 농산물 생산으로 대응해 나가는 길 뿐이라는 그곳 농민들의 말을 듣고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국경 없는 무한 경쟁시대를 맞아 우리 농업도 오직 첨단 기술농업과 고품질 농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만이 우리 농업이 이땅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일본 연수를 다녀온 나는 몇날 몇밤을 지새우며 미래의 푸른 꿈을 설계하고 노지수박, 오이 및 밤고구마 농사를 마무리하기로 하고 개방화 시대에 걸맞는 신기술 고품질 농업으로 승부를 걸어 보기로 결심을 하였다.
일본 후쿠시마 현 선진농가 연수때에 내가 가장 관심있게 보았던 것은 첨단시설의 수경재배 현장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기왕이면 첨단 기술농업으로 승부를 걸어보는 것이 가장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수경재배 농사를 해 보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국내의 대표적인 농가 몇군데와 원예 연구소 수경재배 시설들을 돌아 보았으나 일본이나 국내 수경재배는 꼭 유리온실과 철골 P.C 온실 등 첨단 시설에서만 가능한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우리 곤장에서 생산 출하되고 있는 오이 작목은 토양재배보다 품질과 상품성 면에 월등히 떨어진다는 말을 연수과정 질의 응답에서나 영농 교육때 많이 들어왔고 수경재배에 관련된 서적들에서 여러 차례 읽어 보았기 때문에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제 저렴한 시설비를 들여 농민 누구나 쉽게 수경재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이 바로 내가 연구해야 할 과제였다.
나는 국내의 몇몇 군데의 수경재배 시설들을 농촌 지도소 담당 지도사와 함께 더 돌아보고 원예 연구소의 수경재배 관련 연구관들로부터의 여러 가지 자문도 들어보았다.
수경재배 관련 서적들을 구입하여 몇 번씩 되풀이해 읽어 보면서 여러 방면으로 구상을 해 보았다.
나는 결국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집 앞의 비탈진 계단밭을 정지작업하여 6백평 규모의 3연동 파이프 온실을 세우고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펄라이트를 이용한 절약형 점적식 배지경 양액재배를 시도하여 보기로 하고 세밀한 계획을 세운 후 농협에서 근저당 설정을 하여 대출을 받고 그동안 푼푼이 모아온 적금인출 등을 포함하여 5천여만원의 재원을 확보하였다.
그당시 우리 고장에서는 하우스 농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전, 무 했음으로 지원은 한푼도 받을 수 없었고 작목반원 모두가 100% 자부담으로 현대화 연동 파이프 온실 시공에 참여하게 되었다.
온실 시공업체에서 제시하는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자재만을 단체로 구입하여 안식구와 함께 4개월 동안의 긴긴 겨울동안 눈보라가 몰아치는 엄동설한의 날씨에도 모닥불을 피워놓고 손, 발을 녹이면서 온실 공사를 진행하였다.
온실 시공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동료 작목반원들의 도움을 받아 비닐 씌우기 작업까지 끝내고 나니 정말로 거대한 공장이 들어선 것 같이 웅장하고 은빛 찬란한 파이프 비닐 하우스의 모습이 들어 났다.
그러나 비닐작업을 마친 그날밤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이 떨어졌다. 결속끈을 허술하게 띄워서였던지 낮도 아닌 한밤중에 눈보라와 함께 몰아치는 돌풍으로 비닐을 날려 버렸다.
하늘을 치솟으며 세찬 바람에 날리는 비닐 소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그야말로 밤새 따발총 쏘는 소리보다 더했고 온 동네사람들이 놀라서 전화가 빗발쳤다.
온 식구가 발을 동동 구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다음날 날이 새면서 바라보이는 비닐 하우스 주변에는 0.12 짜리 그 두꺼운 오래가 필름이 산산조각이 나서 눈이 쌓인 것처럼 하얗게 깔려 있었고 철재들도 군데군데 엉망으로 된채 나의 마음을 서글프게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절망할 수는 없었다.
실망은 되었지만 비온 뒤 땅은 더욱 다져진다는 말이 있듯이 작목반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구부러진 철재들을 다시 손보고 비닐 씌우기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는 앞으로 더 큰바람이 불어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철고리를 구입하여 파이프에 드릴로 구명을 뚫고 고정을 시킨 뒤 파이프를 연결하여 고정끈을 견고하게 띄웠다.
내부시설은 관리기를 이용하여 골을 만들고 보온덮개를 깔아 베드를 만든 후 물이 새지 않도록 비닐을 깔고 산소공급과 물빠짐이 용이하도록 PE관을 2분의 1로 쪼개어 엎어놓고 그 위에 펄라이트를 채운 후 점적 테이프를 2열로 배열하고 흑백필름으로 멀칭을 하는 순서로 베드설치 작업을 모두 끝냈다.
배지재료로 사용한 펄라이트는 현재 양액재배 전용이 생산시판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전용배지가 없어서 공업용 보온 단열재로 생산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사용했다.
이제 모든 시설이 끝나고 작물정식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집 한아름 농장에는 첨단 유리온실 대신 중앙 집중제어방식 자동화 시설이 갖추어진 600평짜리 파이프 비닐온실과 값비싼 콘크리트 구조의 수경재배 시설 또는 외국산 랄울 베드시설 대신 보온덮개 베드와 펄라이트를 이용한 값싼 점적 관수식 배지경 양액재배시설이 4개월여만에 모두 완성되었다.
나는 국내 최초로 시도하고 있는 절약형 배지경 양액재배 방법이 부디 시험재배에서 성공을 거두어 첨단 기술농업으로 무한 경쟁시대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마음은 농민들 누구나 한결같아도 엄청난 시설비 때문에 선 듯 달려들지 못하고 있는 모든 농민들이 큰 부담이 되지 않고 저렴한 시설비로 일반 기존 비닐하우스에서도 누구나 간단한 시설로 그동안 큰 피해를 주고 있는 염류축적으로 인한 연작장해를 극복하고 연중재배와 장기재배가 가능하며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는 안전하고 신선한 고품질 농산물 생산과 쾌적한 작업환경속에서 단위 생산성을 높여 높은 농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첫 작목으로 선택한 오이묘를 정성을 다하여 베드에 옮겨 심었다.
시설공사의 지연으로 계획보다 10여일 늦은 92년 3월 중순 미리 육묘장에서 길러온 건실한 표를 조금만 시험해보고 면적을 늘려 나가라고 하는 몇몇 분들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600평의 전포장에 모두 정식을 마쳤다.
그러나 웬일인지 10여일이 지나도 오이묘는 활착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잎이 노랗게 변하고 있어 나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날이 갈수록 실패작이 되는가 보구나 하는 생각으로 애를 태웠으나 나는 틀림없이 무엇인가 잘못된 원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차근차근 그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결국 문제는 양액공급에서 잘못이 있었음을 알 게 되었다.
EC 측정기를 구입하여 양액의 농도를 체크 해보았더니 맹물에 가까운 0.1 미리몰의 성분량을 공급해주고 있었다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나는 곧바로 10배의 농도로 배양액을 공급했더니 3일 뒤부터는 오이잎이 진녹색을 띄며 활착이 되기 시작했다.
그후 우리 부부는 오이 전용 유인기를 설치하여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고 있는 오이 덩굴을 유인하며 마디마다 주렁주렁 열리는 오이를 수확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결과는 첫 시험재배 작형에서 국내 최초로 실용화에 성공을 하게 된 것이다.
밤고구마 터널 조기재배법 개발에 이은 두 번째의 개가였다.
나는 한없이 기뻤으며 흙과 함께 살아온 나의 반평생에 가장 보람있는 일로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알찬 성과라고 자신있게 말하고싶다.
5월 초부터 첫 수확을 하게 되었는데 품질과 상품성도 듣던 이야기보다 월등히 좋았고 관리에 따라서는 곡과도 적게 나오고 재래종 오이의 맛과 향기 그대로였다.
생산된 오이는 15kg들이 골판지 상자에 엄격히 3등급으로 선별하여 오이의 생명인 가시가 떨어지지 않도록 방습지 1장 깔고 오이 1줄 또다시 방습지 깔고 오이를 넣는 방법으로 포장하여 출하했다.
일반 오이오 구분을 하기 위하여 얼굴사진이 들어있는 스티커 상표를 제작하여 상자에 부착 출하를 했다.
이렇게 선별, 포장을 철저히 함으로써 국립 농산물 검사소 서산출장소로부터 품질인증까지 받아 출하를 하게 되니 연일 최고시세로 경락이 되었다.
농촌진흥청에서 발행하는 "농업기술"지와 새농민회에서 발행하는 "은수저" 그리고 지방신문인 "증도일보", "대전일보", "KBS라디오 농어촌은 지금" 프로 등 양액재배에 관한 내용들이 보도되자 전국 각지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농민들의 농장 견학이 줄을 이었다.
관심이 많은 농민들은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찾던 농사방법이라며 무릎을 치며 환호했고 비디오 촬영기까지 동원하여 구석구석 시설구조를 테이프에 담아 가기도 했다.
농장견학이 계속 이어짐으로 해서 견학 농민들에게 하루에도 몇차례씩 농장소개를 하다보면 시간을 많이 빼앗겨 일손이 모자라 애를 태울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구나 단체 견학팀이 방문했을 때는 개폐장치 및 양액 공급장치 계기등에 손을 대어 발생하는 피해도 여러 차례 겪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농장을 연일 찾아주는 견학 농민들을 볼 때 결코 우리 농촌과 농업의 미래도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으며 그들에게서 풍기는 순박한 농심이야말로 나에게 뿌듯한 보람을 안겨주었다.
최근에 와서는 우리 농장 시설과 똑같은 방법으로 양액재배를 하고 있는 농가가 날로 증가하면서 어느 때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양액재배에 관한 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첫해 봄, 가을 두작형을 합쳐서 4천 팔백여만원의 조수익을 올려 양액원료비와 농약비, 광열비 등의 경영비 6백여만원을 제외하고도 4천2백여만원의 순소득을 올렸다.
1년 농사로 총 시설시 5천만원중 80% 이상을 뺐다는 것은 나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1년간 촉성 및 억제작형의 오이 양액재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몇 가지 문제가 되었던 점들을 보완 또는 교체하여 이제는 완벽한 시설을 갖추었다.
18이랑의 보온덮개로 만든 베드시설을 스티로폼 베드로 주문제작하여 9이랑으로 절반으로 줄여서 베드 바닥에는 에스렐 파이프로 지중난방 시설을 설치하여 지난해 낮은 지온 때문에 있었던 문제점을 말끔히 해결하였다.
나는 지중난방 시스템도 1개의 보일러와 순환 모터로 6백평 전면적 구석구석이 일정하게 온도 유지가 될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지중난방 시스템은 우리식 양액공급시스템 개발에 이는 또 하나의 자가 개발품이다.
나는 지중난방 시설까지 설치하게 됨으로서 이제 한겨울철에도 마음놓고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했고 베드를 절반으로 축소 시킴으로서 배지 재료비도 함께 절반으로 절감시켰고 밀식으로 U자형 양방향 유인재배를 함으로서 자재배, 인건비 등 생산비를 더욱 절감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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